大中华文库-西厢记(汉韩对照)


번호:2017042091190662
  • 图书名称大中华文库-西厢记(汉韩对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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图书信息

基本信息

责编李善姬 出版社延边人民出版社
ISBN:978-7-5449-3540-1 出版日期2014.12
开本16开 页数492
版次1/1 装帧方式精装
上传日期2017.04

图书内容

머리말

우리 나라 희곡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간행되고 가장 널리 전해졌으며 가장 영향력이 큰 작품으로는 마땅히 왕실보(王實甫)의 『서상기』를 꼽아야 할 것이다. 왕실보의 생애와 사적에 대해서는 고서에 기재된 것이 매우 적은데다가 또 모순되는 점도 많아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적다. 원나라 종사성(鍾嗣成)의 『녹귀부(錄鬼簿)』와  동덕청(同德淸)의 『중원음운서(中原音韻序)』, 그리고 명나라 진소문(陳所聞)의 『북궁사기(北宮詞記)』에 간간이 기록된 일부 자료에서 우리는 왕실보가 이름이 덕신(德信)이고 대도(大都, 즉 지금의 북경) 사람이며 금(金)나라에서 원(元)나라로 들어왔고 관한경(關漢卿)과 동 시대의 작가로서 약 예순 살 남짓이 살았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가 창작한 잡극극본으로는 『동해군 우공의 호족가문(東海郡于公高門)』, 『여몽정 풍설 파요기(呂蒙正風雪破窯記)』, 『최앵앵 대월서상기(崔鶯鶯待月西廂記)』 등 열 네 편이 있다. 그중에서 『서상기(西廂記)』, 『파요기(破窯記)』, 『여춘당(麗春堂)』 등은 지금도 아직 전편 그대로 남아있고 『판다선(販茶船)』, 『부용정(芙蓉亭)』의 잔편이 남아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유실되었다.
『서상기』의 이야기는 당나라 원진(元稹)이 지은 전기(傳奇)소설 『앵앵전(鶯鶯傳)』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이 『앵앵전』은 장생(張生)과 최앵앵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장생은 최앵앵을 처음에는 좋아하다가 후에는 차버리고 호족 가문에 장가들면서 앵앵을 “제 자신을 망치지 않으면 반드시 남을 망칠 계집”이라고 비방하여 남존여비와 “여인 화근론”의 이념을 선양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농락하는 관료문인들의 후안무치한 행위를 변호함으로서 “잘못을 덮고 감추어 악취미에 빠져들고 말았다.”〔노신(魯迅): 『중국소설사략』에서〕
그 후 『앵앵전』은 사회에 널리 전파되었고  또 다양한 문예형식으로 개편되었다. 예를 들면 북송(北宋) 문인 진관(秦觀)과 모방(毛滂)은 “조소전답(調笑轉踏, 가무 연출의 한 형식)”을 이용하여 앵앵의 이야기를 썼고, 조령치(趙令畤)는 민간의 고자사(鼓子詞, 설창 문학의 일종)를 빌어(상조 · 접련화 商調 · 蝶戀花)『회진기(會眞記)』를 지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비록 『앵앵전』의 내용을 벗어나지는 못하였지만 앵앵의 운명을 동정하고 장생의 박정한 행위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금(金)나라에 이르러 동해원(董解元)이 창작한 『서상기제궁조(西廂記諸宮調)』가 세상에 나오면서 최앵앵과 장생의 사랑 이야기는 새로운 돌파가 있었다. 주제사상과 이야기의 줄거리와 인물성격 등 여러 면에서 동해원의 『서상기』는 『앵앵전』의 기본 틀을 벗어나는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품행이 나쁘던 장생은 사랑에 충실한 인물로 변하였고, 소극적으로 참고 견디기만 하던 앵앵은 반항성이 강한 여인으로 변하여 노부인과 정항(鄭恒)의 억압에 맞서 두 연인은 결연히 함께 난질을 나서 끝내 “아름답고 원만한 혼인”을 이룬다. 이러한 변화는 『앵앵전』의 비속한 봉건 관념을 근본적으로 떨쳐버리고 장생과 앵앵에게 봉건 예의와 도덕에 반항하는 선명한 색채를 부여함으로서 왕실보의 경전적 명작 『서상기』 창작에 튼튼한 토대를 닦아 놓았다.
왕실보가 창작한 『서상기』는 세상에 나타나면서부터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당시 이미 “새로운 잡극과 옛 전기소설 중에서 『서상기』가 천하 으뜸이다”〔(가중명, 賈仲明)의 사(詞) 능파선(凌波仙)에서〕라는 영예를 지니게 되었다. 『서상기』의 간행본은 무려 110여 종이나 달하였고 명나라 때만 하여도 60여 종이나 되었다. 이러한 간행본들 중에서 당시 사람들이 비교적 중요시 하던 것으로는 김성탄(金聖嘆, 1608ㅡ1661)이 평가하고 지적한 『관화당 제6재자서 서상기(貫華堂第六才子書西廂記)』가 있다. 명(明)나라 말, 청(淸)나라 초의 희곡 평론가 이어(李漁, 1611ㅡ1685)는 “『서상기』가 나온 그날부터 지금까지 4백여 년이나 되어 『서상기』가 희곡 작사에서 제일이라고 꼽아주는 사람은 몇 천만이나 되지만 왜서 제일로 꼽히는지 그 까닭을 낱낱이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김성탄 한 사람뿐이었다!”라고 말하였다. (『한정우기』전사여론『閑情偶記』塡詞餘論)에서) 때문에 우리는 이번 『대중화문고 · 서상기』중한대역본도 김성탄이 평론하고 소감을 써놓은 『관화당 제6재자서 서상기』를 선택하였다.
『성탄외서(聖嘆外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서상기』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바 이는 천지간의 훌륭한 문장이다.” “앞으로 그 어떤 절세의 재자(才子)라 할지라도 이런 『서상기』를 나도 지을 수 있다고 함부로 장담하지 말라. 설령 당시의 저자가 생존하여 그더러 이 책을 불태워 버리고 다시 써내라 하더라도 그대로 복제하기는 어려우리니  두 번 다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훗날 다시 고쳐 쓴다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다른 절묘함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번의 절묘함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훗날 이보다 더 절묘하게 쓸 수 없다고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보다 더 절묘하게 쓰리라고 말할 필요도 없다”라고 하였다. 훗날 “나름대로의 또 다른 절묘한” 작품이 바로 300년 후에 나타난 영국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서상기』를 “이번에 이미 절묘하다”고 말하는가?
김성탄은 『서상기』의 주제는 앵앵과 장생이 “천만 번 죽더라도  둘이 죽어 하나로 되기 원하는” “반드시 이룩하고야 말리라는 사랑”이라고 간주하였다. 작중인물에 대하여 김성탄은 이렇게 말하였다. “『서상기』는 다만 세 사람을 썼는데 하나는 쌍문(雙文, 곧 앵앵)이고, 하나는 장생이고 하나는 홍낭(紅娘)이다. 그 밖에 최 부인(崔夫人), 법본(法本), 백마 장군(白馬將軍), 환랑(歡郞), 법총(法聰), 손비호(孫飛虎), 시동, 여인숙 심부름꾼 같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 이 세 사람을 쓸 때 가끔 이용했던 사람들일 뿐이라 그들에 대해서는 일필반획도 덧붙이지 않았다.” “문장에 비유한다면 쌍문은 제목이고 장생은 문자이고 홍낭은 문장에서의 기승전결(起承轉結)이다. 이렇게 많은 기승전결이 있음으로서 제목에서 문자가 나오고 문자 또한 제목으로 스며들었다. 이 밖에 최 부인 같은 사람들은 오직 문장 속에 쓰인 지호자야(之乎者也)와 같은 토일 뿐이다.” “약에다 비유한다면 장생은 병이요 쌍문은 약이고 홍낭은 약을 조제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많은 약을 조제하였으니 약은 병을 고치러가고 병이 나니 약을 먹게 된다. 이 밖에 최 부인 같은 사람들은 약을 조제할 때 쓰이는 생강이나 식초, 술이나 꿀 같은 보제일 뿐이다.” “『서상기』의 전반부는 장생에 대한 글이고 후반부는 쌍문에 대한 글이고 중간은 홍낭에 대한 글이다.” “『서상기』는 반드시 미인과 나란히 앉아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야기에 서리고 얽힌 애틋한 사랑을 깊이 체험할 수 있다.”
문장의 필치에 대하여 김성탄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젊은이들이 『서상기』를 보려한다면 마땅히 먼저 『국풍(國風,『시경』의 제1부분)』을 보도록 가르쳐야 한다. 왜냐하면 『서상기』에 쓰인 일들은 모두 다 『국풍』에 쓰인 일들이기 때문이다. 『서상기』가 쓴 일들은 어느 하나 아순(雅馴)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이것은 모두 『국풍』이 무슨 일을 쓸 때에 어느 하나 아순하지 않은 점이 없음을 따라 배웠기 때문이다. 『서상기』가  쓴 일들은 어느 하나도 투탈(透脫)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 역시 『국풍』이 무슨 일을 쓸 때 어느 하나 투탈하지 않는 것이 없는 점을 따라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필치가 아순하나 투탈하지 못하거나, 투탈하나 아순하지 못하는 흠집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오늘날 보아도 『서상기』와 『국풍』은 계승하고 발전하는 관계임을 잘 알 수 있다. 이른바 “아순”이란 바로 문장이 고상하고 우아하며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고, 이른바 “투탈”이란 심각하고 투철하며 자유롭고 소탈함을 말한다. 공자(孔子)의 말을 빈다면 곧 “마음 내키는 대로 하나 규범은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다”가 바로 “투탈”이고, “규범을 벗어나지 않는다”가 곧 “아순”이다. 예를 들면 『국풍』의 첫 편의 시 『구륵구륵 물수리(關雎)』가 바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하나 규범은 벗어나지 않는다”의 본보기이다.

구륵구륵 우짖는 물수리는
황하의 작은 섬에 있네.
아름답고 착한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배필이라네.

들쭉날쭉 자란 노랑어리연꽃이
물결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네.
아름답고 착한 아가씨를
자나 깨나 찾고 있네.

아무리 찾아도 만나지 못하니                                      
밤낮으로 애만 태우네. 
사무치는 그리움에                             
엎치락뒤치락 잠 못 이루네.
들쭉날쭉 자란 노랑어리연꽃을
이리저리 뜯고 있네.                                  
아름답고 착한 아가씨와
금과 슬을 퉁기며 서로 친해지네.

들쑥날쑥 자란 노랑어리연꽃을
요리조리 골라 뜯네.

아름답고 착한 아가씨와
종과 북을 치며 마음껏 즐긴다네.

군자가 황하의 작은 섬에서 물수리들이 발정기에 우짖는 울음소리를 듣고서 “아름답고 착한 아가씨를 자나 깨나 찾고 있네”를 연상하였으니 이것이 “정에서 우러난” 것이고 나중에 약혼하고 혼인하니 “금과 슬을 퉁기며 서로 친해지고” “종과 북을 치며 마음껏 즐긴”것이라 이것이 예악(禮樂)에서 멎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역시 “마음 내키는 대로 하나 규범은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서상기』에서 『아름다움에 놀라(驚艶)』라는 한 장은 “정에서 우러난 것이고”, 다른 한 장인 『원만한 혼인이 이뤄져(團圓)』는 예악에서 멎은 것이라 여기서 우리는 『서상기』가 『국풍』을 계승하였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필경 2000년이란 시간 간격을 두고 있으니 그 동안에 당연히 커다란 발전과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국풍』에서 “구륵구륵 우짖는 물수리는/ 황하의 작은 섬에 있네”라고 한 것은 객관적으로 새를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서상기 · 전별연에서 울어(哭宴)』에서는 “한 쌍의 원앙을 두 곳에 갈라놓네”와 “때까치는 동으로 가고 제비는 서쪽으로 날아가네”라고 역시 새를 묘사하고 있지만 실은 장생과 앵앵을 비유하고 있다. 또 하나의 예로 “아홉 굽이에 눈물 뿌리니 황하는 넘쳐나고”는 객관적으로 “아홉 굽이의 황하”를 묘사하고 있지만 실은 서리서리 얽힌 앵앵이의 애절한 심정을 상징하여 주관적인 이별의 슬픔과 쓰라린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또 하나의 예는 『구륵구륵 물수리는』에서 “아무리 찾아도 만나지 못하니/ 엎치락뒤치락 잠도 못 이루네”는 다만 객관적인 묘사에 지나지 않지만 『서상기·전별연에서 울어』에서의 “집에 가 비단 휘장 보기가 두렵나니/ 어젯밤 이불속엔 봄 향기도 따뜻하였건만/ 오늘밤 이불속엔 찬 꿈만 서리누나”는 앵앵이의 내심 세계에 대한 섬세한 묘사로서 그리운 심정을 전달함에 있어서 더욱 깊이 있고 투철하며 더욱 소탈하고 자유롭다. 또 하나의 예는 『구륵구륵 물수리는』에서 말한 음식은 오직 “들쭉날쭉 자란 노랑어리연꽃”뿐이지만 『전별연에서 울어』에서 앵앵이는“앞날에는 술이나 음식도/ 죄다 흙이나 진흙 같은 맛이리라/ 정녕 흙이나 진흙이라 할지라도/ 흙의 향기가 있고/ 진흙의 맛이 있으련만./ 따뜻하게 데운 술마저/ 차디찬  맹물 같으니/ 아마도 상사의 눈물인가 봐./ 눈앞에 음식조차 먹기 싫으니/ 애달픈 시름만 가슴 깊이 서리네”라고 하였다. 김성탄은 “이 대목은 술을 말하는지 눈물을 말하는지 분간할 수 없다. 이는 이후주(李後主, 五代 南唐의 군주, 이름은 李煜, 937ㅡ978)가 말한 ‘밤낮으로 오로지 눈물로 얼굴을 씻다’라는 말을 판박이 해놓은 것 같다”고 평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서상기』는 객관 세계와 인물의 내심세계가 이미 하나로 융합되어 서로 뗄 수 없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300년 전에 김성탄은 이미 “왜서 으뜸으로 꼽히는지 그 까닭을 낱낱이 밝힐 수 있었다.”
사실상 『서상기』가 “으뜸으로 꼽히게 된 까닭”은 『서상기』가 『국풍』을 계승하고 발전 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에서 우러나 예악에서 멎는다”는 그 한계를 초월하였기 때문이다. 『국풍』에 사랑을 노래한 『들판에 죽은 노루』라는 한 편의 명시가 있는데 전문은 아래와 같다.

들판에서 잡은 노루
흰 띠풀에 싸서 주네.                                   
춘정에 눈 뜬 아가씨를
멋진 총각이 꼬드기네.

숲속의 떡갈나무
들판에서 잡은 사슴.
흰 띠풀로 묶고 싸니
아가씨는 옥과 같네.

“천천히 가만가만 오세요!
앞치마를 건드리지 마세요!
삽살개가 짖지 않게 하세요!”

마지막 세 구절은 춘정이 한창 이는 소녀가 자기를 꼬드기는 사냥꾼에게 하는 말인데 여관영(余冠英)이 현대어로: “천천히 오세요, 가만가만 오세요!/ 제발 내 앞치마를 건드리지 마세요!/ 개를 건드려 짖게 하지 마세요!”라고 번역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앞치마를 건드리지 마세요”는 사냥꾼이 이미 소녀의 앞치마와 허리띠를 풀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다시 『서상기 · 서찰의 약속을 지켜(酬簡)』에서의 장생의 노래와 비교해 보자.

내 이제 그대의 단추를 벗기고
내 이제 그대의 허리띠를 풀리라
난초와 사향 향기 서재에 감돌건만
야속하게 사람을 몹시도 괴롭히네.
에이, 어찌 얼굴도 돌려주지 않느냐?

향긋한 부드러움 한 품에 안았네.
아, 류신(劉晨)과 완조(阮肇)가 천태산(天台山)에 온 것 같고
봄이 인간 세상 찾아오니 꽃들이 예쁨을 자랑하네.
버들가지 같은 허리 나긋이 배꼬고
꽃송이에 꽃술이 살며시 입을 여니
활짝 핀 모란꽃에 이슬방울 떨어지네.

이에 김성탄은 “비록 쌍문의 얼굴은 끝내 드러내지 않았지만 쌍문의 단추와 허리띠는 어느새 풀리었다. 쌍문의 단추와 허리띠는 결코 쉬이 풀려지는 것이 아니었지만 겉으로는 잔도(棧道)를 만드는 척하면서 남몰래 진창(陳倉)을 기습하는 성동격서의 수법으로 가벼이 풀어버렸으니 이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고수(高手)라 하겠노라”라고 평어를 달았다. 남녀의 애정 묘사가 『국풍』의 암시적으로 “앞치마를 건드리지 말라”로부터 『서상기 · 서찰의 약속을 지켜』에서는 터놓고 “단추를 벗기고” “허리띠를 풀고”(이는 “버젓이 잔도를 만들다”) 나아가서 “활짝 핀 모란꽃에 이슬방울 떨어지네”(이는 “몰래 진창을 기습하다”)라는 상징적인 묘사에 이르렀으니 이야말로 매우 큰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비단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아마 세계적으로도 “둘도 없는 고수”일 것이다.
중국의 시가(詩歌)가 『국풍』에서 『서상기』까지 발전하기에는 중간에 또 당(唐)나라 시(詩)와 송(宋)나라 사(詞)의 많은 영향이 있었다. 이를테면 『서상기 · 전별연에서 울어(哭宴)』에서 앵앵의 노래가 바로 그러하다.
그는 수심에 찬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넋 나간 듯 멍해 있네.
글썽한 눈물 억지로 참아가며
남들이 알아챌까 두려워하네.
갑자기 고개를 푹 떨구더니
길게 탄식하며
흰옷자락 만지는 척 하네.
……
임은 오늘밤 어디서 묵으실지?
꿈속에서도 찾을 길 바이 없으리!

당(唐)나라 사람 위장(韋莊, 836ㅡ910)의 사(詞) 『여관자(女冠子)』에는 이미 이와 비슷한 묘사가 있었다.

눈물 참으며 고개 숙이니
미간엔 부끄러움 가득 어렸네. 
넋을 잃은 줄도 모르고
부질없이 꿈속을 헤매고 있네.

눈물을 참고, 고개를 숙이고, 미간을 찌푸리고, 꿈속을 헤매는 등 묘사는 두 사(詞)에 다 같이 묘사되어 있으나 당사(唐詞)는 간결하게 다뤄져 고상하고 우아하다면, 원곡(元曲)은 자세하게 진술하여 정연하고 섬세하다. 서로 비교해 보면 원곡에 대한 당사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당사에 대한 원곡의 발전도 찾아볼 수 있다. 또 예를 들어 『전별연에서 울어』에서 앵앵이 부른 노래를 보자.
사방 둘러싸인 산들의 경치 속에
석양이 한 가닥 채찍을 비춰주네.
세상 온갖 시름이 이 가슴을 메웠으니
고작 이까짓 수레로서야
어찌 다 실을 수 있으랴!

이것으로 송(宋)나라 때 여류 시인 이청조(李淸照, 1084ㅡ1151)의 사『무릉춘(武陵春)』의 한 단락과 비교해 보기로 하자.

쌍계의 봄빛이 하도 좋다하니
쪽배를 띄워 놀아나 볼까.
다만 쌍계의 거룻배로는
이 많은 시름을 다 싣지 못하리.

이청조는 작은 배로는 시름을 다 싣지 못한다 하고, 『서상기』는 이까짓 수레로는 시름을 실어내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여기서 원곡(元曲)이 송사(宋詞)를 계승하고 발전시켰다는 것을 더욱 똑똑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2000여 년의 문화적 축적이 있었기에 『서상기』에서 이별에 대한 애절한 묘사가 새로운 고봉에 오를 수 있었고 남녀사랑에 대한 묘사도 중국 문학사상에서 전례 없는 새로운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이정도(李政道) 교수는 “예술, 이를테면 시가, 회화, 조각, 음악 등은 창조적인 수법을 통해 매 한 사람의 의식 또는 잠재의식 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는 정감을 불러일으키므로 정감이 귀중할수록 그 역할은 더욱 강렬하고 그 반향은 더욱 보편적이며 그 예술성은 더욱 우수하다”(『광명일보』 1996년 6월 24일)라고 말하였다. 『서상기』에서 최앵앵과 장생의 사랑에 대한 묘사가 바로 사람들의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동경을 반영하였기 때문에 『서상기』가 세상에 나타나자 매우 큰 환영을 받았고 그의 반향도 오랜 세월을 두고 지속되면서 중국 문학 발전사와 연극 발전사에서 하나의 예술 고봉을 이룩하였다.
300년이 지난 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방에서 널리 전파되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중국의 『서상기』와 어깨를 견줄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동서방의 사랑 이야기를 서로 비교해 본다면 동방의 연인들은 표현이 보다 함축되고 완곡하나 서방의 연인들은 한층 더 단도직입적이다. 예를 들면 『서상기 · 서찰의 약속을 지켜(酬韻)』에서 장생과 앵앵은 이렇게 노래로 화답한다.

장생: 달빛도 교교한 밤이라
꽃그늘에 깃든 봄빛마저 적적하네.
휘영청 밝은 저 달 어이 맞으랴
달 속 그 사람은 보이지 않네.  

앵앵: 그윽한 규방은 적막만 감도나니
묘령의 이 청춘 어이 보내랴.
소리 높이 읊조리는 저 사람은
장탄식 하는 사람 가엾이 여겨야 하리.

장생은 자신이 앵앵을 사모한다고 말하지 않고 완곡하게 달을 보니 그 사람이 그리워진다 하고, 앵앵도 자기가 재자(才子)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그저 재자는 가인(佳人)을 가엾이 여기라고 암시할 뿐이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표현은 크게 달라 단도직입적으로 악수하고 입 맞춘다. 조우(曹禺)가 번역한 그 장면을 보자.

로미오: 신께서도 입술이 있거늘 참배자도 있겠지?
줄리엣: 참배하는 친구여, 입술은 기도하는데 쓰는 것이라오.
로미오: 오, 나의 신이시여, 입술도 손을 따라 배우라 하세요.
부디 이내 소원 받아주시구려
안 그러시면 신념도 번뇌로 변한답니다.

이들이 말하는 것은 신과 참배자와 기도이지만 실제로 가리키는 것은 줄리엣과 로미오의 입맞춤이다. 게다가 말하는 동시에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동, 서방이 서로 다른 점이다. 동방에서는 정에서 우러나 예에서 멈추지만, 서방에서는 첫눈에 반하거나 심지어는 종교의 이름을 빌어 사랑의 실속을 차린다. 그러나 동, 서방의 연인들이 같은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서상기 · 서찰의 약속을 지켜』에서 장생의 노래다.

그대 만약 나와 눈길이라도 마주쳐 준다면
담을 사이 두고라도 날 새우며 화답하리
이걸 두고 통하는 사람끼리 아끼는 거라 하리.

이는 로미오가 줄리엣과 헤어지면서 나누는 대화와 별 다른 점이 없다. 조우와 주생호(朱生豪)가 번역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화를 보자.

로미오: 사랑이 사랑을 찾을 때에는
무단결석하는 아이가 교실을 뛰쳐나가듯 하고
두 연인이 헤어질 때는
아이가 풀이 죽어 교실로 되돌아오는 것 같네.
줄리엣: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이별은 이처럼 달콤하고 처량하나니
나는 밤새껏 그대의 안녕을 빌고 싶네.

장생이 말하는 “통하는 사람끼리 아끼는 것”과 로미오가 말하는 “사랑이 사랑을 찾다”와, 장생과 최앵앵이 “밤을 지새우며 화답하다”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밤새껏 안녕을 빌고 싶네”는 비단 내용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형식과 어휘까지도 거의 같아 이야말로 “시인들의 소견은 거의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장생의 말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말과 같은 점이 있지만 앵앵과 줄리엣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이 점은 홍낭과 유모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유모는 제2막 제5장에서 줄리엣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럼 가보세요, 가보세요, 어서 신부(神父)님께로 가보세요
거기선 신랑이 아가씨가 신부(新婦)가 되여 주기를 기다린답니다! (조우 역)

유모의 말은 단도직입적이라 역시 줄리엣의 단도직입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홍낭은 가끔 말을 빙빙 돌려 함으로써 그녀의 총명과 영리함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또 앵앵의 함축되고 완곡한 성격을 돋보이게 해준다. 예를 들면 『서상기 · 보내온 서찰에 시비를 걸어(鬧簡)』에서 홍낭은 앵앵에게 이렇게 말한다.

언제 보았나요
서찰을 보내는 사람이 오히려 심부름꾼을 속이는 것을?
그 작은 배알이 꼴려 수작이라도 부린다면
그대더러 동쪽 담장을 뛰어넘게 하고
간통에라도 말려들게 하리라.
원래 그 오언시는 야삼경을 약속하는 대추가 들었고
네 마디 시구는 구리산(九里山) 매복이었네.
그대는 나마저 감쪽같이 속이고는
운우의 밀회 속에서 안정을 찾으려 하면서
나더러는 틈내어 서찰을 전하라네!

김성탄은 말하기를: “『서상기』는 오로지 이 한 사람(쌍문)을 쓰기 위해 부득이 또 한 사람을 쓰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홍낭이다. 만약 홍낭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쌍문을 써낼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서상기』가 홍낭을 쓴 것은 어디까지나 더욱더 박력 있게 쌍문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하였다. 이로서 알 수 있는바 중국의 평론가들은 일찍부터 “측면 묘사를 통해 주요 사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표현기법을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서상기』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주제가 모두 사랑과 가문의 모순을 다루고 있다. 『서상기』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으로 가문의 영예를 빛내고 “화촉 동방”을 통해 두 사람의 사랑을 이루었는데 이는  전형적인 중국식의 원만한 결말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은 오히려 자녀들의 죽음을 대가로 하여 두 가문이 대를 이어 내려온 원한을 풀고 우정을 이루게 되는데 이는 서방에서 사랑과 영예의 충돌이 빚어낸 전형적인 비극이다. 다시 말하면 모순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동방에서는 문화를 사용하지만 서방에서는 폭력을 사용한다. 작품의 구성을 보더라도 두 극의 줄거리는 모두 곡절이 많다. 그러나 『서상기』의 곡절은 내심적인 것이 많고 셰익스피어의 극에는 외부적인 것이 많다. 작중 인물을 놓고 보면 『서상기』는 외재적 형상에 대한 묘사가 더욱 생동하고 셰익스피어의 극에서는 내재적 정감에 대한 묘사가 보다 깊이 있다. 작품의 필치로 보면 『서상기』는 추상적인 같은 글자를 중복하는 첩자(疊字)와 역사 전고(典故)를 많이 활용하였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구체적인 형상과 쌍관어를 많이 사용하였다. 하여간 두 극은 저마다의 특색과 장점을 지니고 있다.
『서상기』는 중국 문학사에서 특히는 중국 연극사에서 거대한 영향을 일으켰다. 원(元)나라 시대의 저명한 작가인 백박(白朴)과 정덕휘(鄭德輝)는 『서상기』를 모방하여 『동수영 화월 동장기(董秀英花月東墻記)』와 『추매향 한림풍월(㑳梅香翰林風月)』을 창작하였고, 명(明)나라 시대의 이일화(李日華)는 남곡(南曲-宋, 元 시기 남방 희곡)을 이용하여 『서상기』를 『남서상(南西廂)』으로 개편하였다. 저명한 희곡 작가 탕현조(湯顯祖)는 남달리 『서상기』의 영향을 크게 받아 “정으로 도에 어긋남을 바로잡다”라는 주장을 내놓았고 이에 기초하여 또 하나의 희곡 명작인 『모란정(牡丹亭)』을 창작하였다. 명(明)나라 이후로는 각종 지방 희곡들이 잇따라 왕성하게 나타났는데 그 대부분이 『서상기』를 각색한 것으로서 『서상기』로 하여금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수한 공연 목록이 되게 하였다. 그 밖에 문학예술 형식, 이를테면 소설, 시가, 설창, 종이공예, 흙인형, 세화 등에도 『서상기』의 소재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조설근(曹雪芹)은 『홍루몽(紅樓夢)』에서 “『서상기』의 빼어난 노랫말은 희롱하는 말로 통하고, 『모란정』의 애틋한 가사는 미인의 마음을 흔드네”라는 제목으로 특별히 한 회(回)를 써놓았으니 이는 『서상기』가 『홍루몽』의 남녀 주인공인 가보옥(賈寶玉)과 임대옥(林黛玉)의 반봉건적 성격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를 알 수 있다.
『서상기』가 서방에서는 비록 셰익스피어의 작품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이제는 점차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호감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1935년 영국에서는 웅식일(熊式一)의 산문체 역본이 출판되었고, 1990년대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대학 웨이스트 교수의 산문체 역본이 출판되었다. 1992년 중국 외국문출판사에서 내가 번역한 운문 역본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나는 김성탄의 평론에 근거하여 다만 4막 16장만 번역하여 『꿈에서 놀라 깨어나(驚夢)』까지만 번역하였었다. 그후 1997년에 이르러 호남인민출판사가 중영대역의 중국 고전 명작 총서 『서상기』를 출판하게 되어서야 나는 5막 20장 모두의 영어번역을 완역하였다. 그중 가사부분은 모두 운문으로 번역하였고 대사부분은 산문으로 번역하였다. 이번에 출판되는 중영대역 『대중화문고 · 서상기』의 영어번역에 대해 나는 또 한 차례의 전면 수정을 하였다.
현재 『서상기』는 영문역본 외에 또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일본어, 라틴어, 힌디어, 베트남어, 조선어로 번역되었고 고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Oidipous)왕』과 인도 범문 극본 『샤쿤탈라(Sakuntala)』와 더불어 세계 3대 고전 희곡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허연충
2000년 10월 24일 
북경대학 창춘원에서